‘마션’으로 보는 우리는 움직이며,
살아갈 것이다.
(우주, 행성, 인류, 행동, 방랑자 그리고 플랑크톤)
신문방송학 11학번 김영훈

(참고로 가족들은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꿈나라로 가셨다.)
때는 한가롭고 수업도 없는 금요일 날, 영화 표가 네 개가 있었습니다. 곧 기한이 지나갈 예정이라 급작스럽게 가족들과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과제 때문에 바쁜 데다가 흥미로운 영화가 없다고 생각한 저로서는 조금 귀찮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제가 그런 생각을 한 것을 후회했습니다. 오늘의 소개는 몇 년 거리로 떨어져 있는 화성에서의 위대한 생존 “마션(The Martian 2015, 10, 8, 리들리 스콧 감독, 맷 데이먼 주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지요.

(저게 소설의 첫문장이다……. 원문은
"I'm pretty much fucked.
That's my considered opinion.
Fucked.")
That's my considered opinion.
Fucked.")
마션은 앤디위어의 SF소설을 각색하여 만든 영화입니다(영화하고 내용이 아주 조금 다른 편, 거의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줄거리는 주인공 ‘마크 와트니 (Mark Watney)’은 대원들과 화성을 탐사하다가 갑작스러운 기상악화로 이탈해 남겨진 장비들과 화성에 남게 되지요. 후에 정부는 위성사진을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되지요. 주인공은 화성에 남겨지더라도 자신은 절대 여기서 죽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남겨진 장비와 식량만으로 화성에 살아남기로 했습니다. 다른 대원들 분량의 식량과 장비를 통해서 연명하다가 다행히 그는 식물학자인지라 남겨진 감자를 통해 화성에서 식량을 재배하게 되지요. 인분과 연료에서 나오는 증기를 통해 감자를 수확하여 당분간의 식량 걱정은 사라지게 되지요. 물론 평온한 것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식량을 잃게 되는 일도 있었지만 와트니는 역경을 넘어 구시대 통신장비를 통해 본부와 연락을 취하고 각각 떠난 대원들과 나라들이 그의 구조를 바라며 모두가 한마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긴 시간이 흘러 정부는 그를 구조하기로 했는데 뒤의 이야기가 궁금하면 앞서 말한 듯이 미리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시점에서 영화개봉이 끝났지만, 아직 보지 않은 분은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으니 DVD를 통해 보는 걸 추천합니다.
(이미지만봐서는 상당히 고생길이 험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우주판 삼시세끼……. )
절망은 항상 우리 곁에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갑자기 나타나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게 하여 주저앉게 만드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점점 주저앉게 되지요. 하나 일단 자리를 딛고 일어서면 적어도 1%의 성과는 보일지도 모릅니다. 1%라는 터무니없이 적은 숫자에 대해 비관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확률에서 0%하고 1%의 차이는 개개인에 따라서는 작을 수고 있지만 적어도 일어날 확률이 있다는 것은 확실한 게 1%입니다. 그리고 그 1%가 우리가 행동을 하면 할수록 증가한다면 당신은 움직이겠습니까?
지구를 넘어서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요? 우주란 것은 매우 드넓은 장소이지요. 끝은 어느 정도이며 그 깊이조차 헤아릴 수 없는 존재라고 하지요. 우리는 그 속의 플랑크톤(plankton)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죠.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플랑크톤이라는 단어에 대해서요. 맞아요, 대부분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작고 바다에 살며 많은 수를 가진 그 생명체들이요. 그 작은 생명체의 학명이 행성을 뜻하는 영어 ‘플래닛(planet)’이 사실 비슷한 어원에서 시작을 아는가요? 그리스어로 플랑크토스(planktos, πλαγκτός)라는 단어로 방랑자를 의미합니다. 플랑크톤은 지구의 방랑자이며 행성들 또한 넓디넓은 우주의 방랑자인걸 보면 의미심장한 단어라고 생각이 되네요. 과거 우리의 선조들도 방랑하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수렵과 채취를 통해 장소를 움직이는 생활이 주를 이루었죠.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수확을 하는 방법을 알게 되자 정착생활을 시작하죠. 이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상 모든 문명을 시작이죠. 지금이야 농업에 대해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모든 상업과 무기, 정치 등 문화는 농업에서 시작하게 되었죠. 사실 이 수확의 기분은 거저 얻은 게 아니지요. 사람의 끈기와 관찰이 모든 것의 시작이죠. 만약 그 시절의 선조들이 포기했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았을지 생각하게 합니다…….

(우주와 행성에 비해 우리는 하나의 작은 플랑크톤 같은 존재)
주인공의 행적을 보면 인류는 한번 마음을 먹기 시작하면, 그것이 선이든 악이든, 욕심이든 생존이든, 절대 가만히 있지 않고 꾸준히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요. 그것이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결과적으로는 우리를 이롭게 만들지요. 생각해보면 우리의 행동이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행동을 한다는 것 그 자체가 의미가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발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산이 높다 하여 오를 수 있을까?'라고 고민을 하고 있을 때, 한번은 계획, 또는 마음을 잡으면 일단은 저기까지 가보자, 그다음에는 ‘목표량을 조금 늘려보자’는 마음으로 추가계획을 세우는데 나중에 보면 정상에 올라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지금이야 높은 문제 때문에 쉽지가 않아 절망하지만, 일단은 가까운 문제부터 조금 고쳐나가며 개량을 하고 추가로 손질을 해보며 자신의 눈을 낮춰보아 잘못된 것이 없는지 확인하는 세세함도 보기도 합니다. 어쩌면 빠르게 달리는 지름길보다 겪어보면서 천천히 걸어가는 길이 더 인상에 남을지도 모르죠. 천천히 걸어가면서 이 길은 이런 느낌이며 풍경은 이렇게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다시 그 길을 걸을 때는 힘든 길이 아니라 산책을 한다는 느낌을 얻죠.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것들, 그것이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경험과 행동은 인류에게 있어서 최고의 선물이자 좋은 기술이죠.

마션을 보면서 한 사람의 행적이 마치 인류의 움직임과 비슷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마음먹어서 행동한다는 것은 얼마나 의미가 있는 시작이란 것을 느꼈지요. 우리 인류가 전 지역을 다 정복했다고 믿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주라는 공간 안에서 플랑크톤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죠. 자기 자신이 작다고 느끼는 순간 절망을 가질지 모르지만, 행동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존재하고 대를 이어나가는 역사를 스스로 만들지요. 인류는 행동하고 경험을 하면서 서로의 사이가 친하거나, 서먹하거나, 혹은 적대적이라도 공동의 목표 앞에서는 그 경험과 생각과 이상을 서로 나누어 발전해나가는 살아가는 방랑자들이지요.


(그래비티, 인터스텔라, 그리고 마션……. 우주를 주제로 한 작품이 히트를 쳤다.
우주 3부작?)
이번 해에는 우주와 관련된 영화 세 작품이 히트를 한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주의 허하고 무(無) 공간 속의 작은 인간 ‘그라비티’, 시공간을 뛰어넘어 답을 찾으려고 하는 눈물 깊은 부녀의 이야기 ‘인터스텔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혀 다른 환경, 그것도 홀로 남아 주어진 물품만으로 살아가는 우주의 로빈슨크루소 ‘마션’……. 3작품의 공통점은 넓은 우주 안의 인간은 보잘것없는, 하나의 티끌에 불과한 존재로 감히 대적한다는 느낌을 들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죠. 그러나 이 세 영화의 주인공들은 처음에는 절망하나 자신이 가진 희망을 걸어 행동하면서 서로의 답을 찾아내죠. 넓은 이 공간 속, 우리는 하나의 작은 행동에 크게 의미를 가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봅시다. 선조의 사소한 발견이 우리 인류의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생각을 하면 우리의 행동이 사소하다고 볼 수가 있을까요?

(위성사진, 저 초록색이 전부다 플랑크톤이다!)
플랑크톤의 수는 우주의 있는 행성보다 많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인류도 지구에 머물지 않고 우주에 정착할 정도로 많아질 것입니다. 방랑자보다 더 많은 방랑자, 방랑자 위의 방랑자, 현재 우리는 거주지에 살아서 방랑하지 않고 정착생활을 하고 있죠. 하지만 우리의 생각은 넓디넓은 지식과 더 나은 삶을 위해 여기저기 떠돌며, 행동하며, 생각하는 방랑자이지요.
우리의 후손들은 그 방랑자가 되어 더 넓은 세계를 탐험하며 정착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방랑을 하면서 얻은 새로운 경험, 정보, 행동을 통해 우리를 나아가게 합니다.우리 시대까지 오려면 멀었지만 만일 우리의 작은 행동이 앞으로의 역사에 후손들이 참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큰 기대를 했다는 느낌이 들게 합니다.


(그렇다고 포기를 하는게 죄악이란 건 아니다. 다시 행동할 지의 여부가 중요한 것이다)
절망이 다쳐오더라도 행동을 통해 우리는 계속해서 살아나갈 것이고 후손들에게 하나의 경험을 보여주는 첫걸음이 ‘끝나더라도 행동은 할 것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이 이상 끝을 내면서 여러분의 작은 행동 하나라도 괜찮으니 생각을 해봅시다.
앞으로, 우리의 작은 행동이 큰 영향이 올 것이란 것을…….
공식 홈페이지 : http://www.martian.kr/
댓글 없음:
댓글 쓰기